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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인터뷰 - 조정구

분류
조합원 인터뷰
인터뷰 일시
201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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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시빈민 예술노동자입니다 - 조정구
인터뷰 날짜 : 2018.12.16
인터뷰 및 정리 : 나동혁 조합원
장소 : 조정구 조합원 자택
지역활동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과거가 궁금한데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흠. 저 어릴 때 동네에서 남들 다 따는 워드2급 자격증을 재수했었거든요. 어머니가 하도 기가차고 약이 오르니까 합격하면 무려 소원을 하나 들어주시겠다고 그래서 대뜸 칼이 한 자루 갖고 싶다고 했어요. 당시 열넷 미성년자라 진검은 안 되고 결국 가검이었는데, 이듬해 합격 때까지 계속 더 싸고 멋있는 가검 정보를 찾다보니 가검보다도 그 시장 자체가 궁금해졌어요. 그렇게 한 3년 지나고 보니까 도검장인이 되어야겠다 싶은 거예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제대로 공부하려면 일본에 가야겠다 싶은데, 도통 갈 방법을 못 찾고 있다가 동네 복싱체육관 창문에 ‘일본에서 프로데뷔 가능’이라는 홍보문구를 보고. 무릎을 탁 쳤지요. 이거다 하면서”
아니 저 지역활동을 하게 된 계기나, 홍우주에 가입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달라는 건데요?
“기다려 보세요 다 연결 됩니다. 이야기를 이어 가자면 결국 울진으로 칼 만드는 사람을 찾아갔는데 저보고 어리석데요. 칼 만드는 기술은 2, 3년이면 배우지만 필요한 공부는 지금 아니면 못 한다고. 그래서 늦게나마 공부해서 공예과에 들어갔습니다. 1년 다니고 나니까 관심사가 달라져서, 반수로 시각디자인과를 가려 했는데 떨어졌고 입대를 했죠. 군 생활 중에 으레 그렇듯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관심사가 더 다양해졌어요. 복학하고서는 공예디자인, 시각디자인, 만화 뭐 관심 가는 전공은 닥치는 대로 들었어요. 공부할수록 모든 분야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자취하면서 먹고 살기도 해야 되는데 아무 일이나 하지 말고 내 재능으로 벌어 먹어보자 싶어서 벽화, 일러스트, 사진, 거리초상화 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던 것 같아요. 아 이러다 죽겠다 싶을 무렵에 어찌 졸업은 했고, 군대시절부터 써왔던 시나리오로 웹툰을 그려봐야지 싶어서 청주 학교 앞 자취방에 그대로 1년을 더 살자 작정했는데, 간간히 만나서 놀고 일하고 했던 겸조(현 홍우주 조합원)라는 친구 권유로 서울에 왔어요. 저보다 1년 먼저 서울생활을 시작한 친구인데, 그 친구가 살고 있던 ‘우루루’라는 쉐어하우스에 같이 살게 되었죠. 그때 우루루는 성산동에 있었어요.
휴 이제 본격적으로 마포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가요?
“네 그렇죠. 우루루와 함께 살던 시절이 참 좋았어요. 월세도 많이 들지 않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재밌었어요. 해커, 배우, 활동가, 타투이스트 등등 정말 다양했습니다. 거기서 만난 재상이 형(홍우주 조합원)은 사회운동을 많이 했는데 세월호 2주기 집회 때 자주 광장에 갔었어요. 같이 막 울고 화내고 그랬는데 그 관심이 이어져 다정한 사무소에서 주최하는 마포로컬리스트컨퍼런스 기획단에도 들어갔어요. 그때 인연으로 다음해 컨퍼런스에도 스텝으로 참여했었는데, 그때 처음 타투도 경험했어요. 이런 재미난 경험 때문에 결국 마포에서 살고 마포에서 활동하고 마포에서 돈도 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은 타투 개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통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나요?
“도시빈민 예술노동자라고 말합니다. 이게 현재 제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의뢰 들어오는 일은 웬만하면 거의 다 합니다. 그중에 일러스트 외주가 비중이 젤 높지만, 다른 일도 많이 합니다.”
이런 생활이 좋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도 할 거 같은데요?
“늘 불안하죠. 그런데 그 이상으로 재밌습니다. 직장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이 겪는 사무와 정무 과정에서 받는 모욕이나 스트레스를 전해 듣다 보면, 어휴 저는 팔자 좋은 한량이다 싶어요. 무엇보다 내가 하는 작업 고민들이 회사 고민 대신 해 주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 고민이구나 하면서 자위도 탁 하고 그렇습니다.”
현재 생활구조가 지속가능한가요?
“저만 생각하면 현재 벌이로 유지는 가능합니다. 이번 집 보증금 마련할 때는 부모님 도움도 좀 많이 받았는데 그 동안 내 생각만 하며 너무 막 살았다 싶더라구요. 이제 돈도 좀 제대로 벌고 사람구실 해야 부모님한테 면도 서겠다 싶고 그러자면 제대로 중심을 잡아야겠다, 지금처럼 온갖 외주작업으로 그때그때 연명하면서 개인작업도 병행하는 건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타투를 하신다고 했는데?
“최근에야 생업으로 삼고 제대로 해 보고 싶어졌어요. 비교적 다른 일들보다 빨리 금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겠다 싶었고, 최근에 다행히 작업공간도 생겼구요.”
현재 법적으로 타투가 인정되지 않고 있죠?
“네. 암묵적으로 경제활동으로 인정하면서도 법적인 대책은 계속 회피하고 있어요. 타투 인구는 벌써 100만을 넘어섰다는데요. 사회 인식도 굉장히 바뀌었구요. 다른 형님한테 들었던 이야기인데, 주변 민원으로 숍에 경찰이 온 적이 있었데요. 출동한 경찰이 ‘아 타투숍이었네요’ 하면서 둘러보더니 민원내용만 공지해주고 그냥 갔데요. 현실이 이 정도인데 이게 왜 아직 불법인지 이해가 안 가요. 합법이 되면 세수확보 입장에서도 훨씬 나을텐데요. 사람들 인식도 있지만 아무래도 의사들이 반대하니까 그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어떤 경로로 고객을 확보하나요?
“요즘은 인스타를 많이들 한더라구요. 도안이나 작업사진들을 꾸준히 올리면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팔로우하고, 자연스럽게 손님도 많아진다고. 저는 아직 한참 더 연습하고 경험도 쌓아야 되구요. 당장은 포트폴리오용으로 저렴한 가격에 지인들 위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경험이 좀 쌓이면 도안이나 작업사진용 인스타 계정을 열 생각이에요.”
전망이 밝은가요?
“저만 더 잘하면요. 능력만 있으면 가능성이 있어요. 세금도 안 내고(웃음). 재작년쯤 저 타투 작업해 준 형님이랑 벨기에랑 네덜란드의 타투컨벤션에 스태프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근데 형님이 하루 앉아서 몇 백 만원을 벌더라구요. 한국도 타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어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격 책정은 작업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면적, 세밀함, 기술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나뉘어요. 공정이 세밀할수록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실력만 쌓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부모님에게는 말씀 하셨나요?
“당연하죠. 처음엔 기겁하셨어요 아주. 어머니는 제 팔에 있는 문신 처음 보시더니, 오열을 하시더라구요. 저도 같이 무지하게 울었죠. 아버지도 성격인 온화하신 분인데도 많이 흥분하셨습니다. 합법화되면 인식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부모님도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빨리 합법화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죠. 아무래도 자식이 당당하길 바라는 게 당연하니까요. 저는 타투가 이미 하나의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사회운동에도 참여하고 싶은 거죠?
“네, 그러고 싶어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 때 경찰들의 고압적인 태도를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물대포에도 맞아 보고 군화발에도 맞아 보니 궁금했습니다. 결국 경찰도 을인데 왜 우리가 서로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걸까?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할까? 저도 의경이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그냥 시켜서 그러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안 그러면 부대 돌아가서 내가 맞으니까. 군생활이 한국 남자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겪은 고초를 생각하면 눈물이 펑펑 나요.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습니다. 누구든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같이 분노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어떤 고민을 많이 하시나요?
“군대얘기를 해서 그런지, 당장 생각나는 건 페미니즘인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제일 끔찍하게 무시되는 부분이니까요. 일단 저부터도 참 끔찍한 행동을 많이 했구나 싶어서, 다시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운 감정이 들면서 지난 경험을 새롭게 다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마포라는 지역을 통해 하고 싶은 활동은 어떤 것인가요?
“일차적으로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좋아하고 항상 마음이 갑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활동에 많이 참여했어요. 우리동네나무그늘이나 홍우주의 부탁으로 진행한 작업이 많은데 그게 다 활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내 앞가림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가로서 내 작업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홍우주에서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출자금 내고 조합비 내면서 협동조합을 운영한다는 생각 자체가 맘에 들어요. 조합원이 되면 당장 직접적인 활동을 못해도 간접적으로 내가 지지하는 활동에 보탬이 된다고도 생각하고요. 그래서 홍우주, 나무그늘, 성산사회복지관, 여성민우회, 해빗투게더 등 여러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관계하는 단체가 늘어나는 게 좋습니다. 또 제가 상근을 하지 않아도 내 작업으로 단체와 관계를 맺는 게 좋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뭔가 내 작업으로 홍우주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2018년 홍우주 총회에 와서 홍우주를 비빌언덕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올 한 해 정말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STACCATO H 보조강사를 비롯해서 큰 돈은 아닐지라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도움이 되었어요. 또 홍우주를 통해 관계망이 넓어지고 그 덕분에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것도 고맙습니다.”
앞으로 홍우주랑 어떻게 관계를 맺고 싶은가요?
“앞서 말했듯이 내 작업과 홍우주 활동이 연계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홍우주가 지역자산화에도 열심히 참여중인데 제가 해빗투게더(지역자산화 추진을 위해 설립한 협동조합) 로고랑 홍보영상을 만들었거든요. 이런 식으로 제 작업이 활동에도 보탬이 되는 방식이었으면 해요.”
훈훈하네요.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홍우주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남아주세요. 앞으로도 비비고 싶은 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