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인터뷰 - 하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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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021, 4:52: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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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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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의 추억을 안고 사는 생각 많은 디자이너-하지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그래픽 디자이너 입니다. 그래픽 디자인과 관련된 인쇄물이나 출력물, 웹이미지 등을 만들어요. 현재는 파이카라는 팀을 만들어 동료와 둘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전에는 아트스트(artst)란 이름을 썼구요.”
파이카나 아트스트 의미가 뭔가요?
“예술가(artist)가 아니고 아트스트(artst)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디자인에 예술을 입히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예술적인 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해 아티스트를 살짝 바꾼 거죠. 처음엔 이 이름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아티스트 아니냐고 오해를 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어린이 같아서 갈수록 맘에 안 들더군요. 파이카는 프랑스 사람이 만든 단위 중 하나입니다. 활자크기를 재는 단위입니다.”
특별히 둘이 팀을 만들어 일하는 이유가 있나요?
“마인드가 잘 맞아요.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과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대규모로 팀을 구성하기는 힘들어요. 현재 파트너는 이전 회사에서 만났는데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오히려 같이 하게 됐습니다. 서로 스타일이 같으면 저는 시각이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의뢰가 들어오면 일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같이 합니다. 초기에 의견 조율하는 과정에서 많이 싸울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싸우기도 하는 거죠. 무조건 다 좋다 좋다 하기만 하면 별로 발전이 없는 것 같아요. 출퇴근 시간은 따로 없고 각자 맡은 일을 약속한 시간까지 해내면 됩니다. 일단 수입이 발생하면 사업자 통장에 모아놓고 무조건 1/2씩 분배합니다.”
굉장히 특이한 방식이네요. 문제는 없나요?
“요즘은 딱히 없습니다. 처음엔 출퇴근 시간을 정하기도 했는데 어차피 잘 안 지켜요. 각자 작업 스타일이 있고 각자 일하기 편한 환경과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 남으면 다른 사람 작업도 많이 보러 다녀야 하구요. 서로 의심을 하면 끝도 없는 것 같아요. 아주 옛날 초창기에 한 번은 뭐하고 있을가 궁금해서 전화로 물어본 적도 있었어요. 아차 싶어 후회했습니다. 지금도 후회해요. 저희는 각자 맡은 프로젝트만 완수하면 됩니다. 출근 하든 말든 상관 안 해요. 가끔 그냥 얼굴 보고 밥만 먹자 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해외 워크샵 갈 때는 같이 갑니다. 미안한 마음이 생겨서 일단 같이 간 다음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그래도 돈까지 똑같이 나눠 갖는다는 건 엄청난 관계인데요?
“나중에 회계 처리하고 이런 게 머리 아픈 일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같이 나눠 갖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지금은 수입이 좀 안정화 되었나요?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죠. 이제 같이한지 3년이 조금 넘어가는데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싶어요. 이름도 바꾸길 잘 했다 싶구요. 이 방식으로 3년 정도는 더 해보고 싶습니다. 내공을 쌓고 싶어요.”
스스로 홍대를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디자인 자체는 서울 전체를 포괄합니다. 홍대를 맴도는 이유는 이 근방에서 계속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마음이 편해요. 2002년 연남동에 들어 온 이후로 계속 그랬습니다. 지금 사는 곳은 명지대 근처로 옮겨갔지만 작업실은 여전히 연남동에 있어요. 아트스트가 2015년 4월에 시작했는데 작업실이 계속 연남동에 있습니다. 서울 왔을 때 처음 살기 시작한 곳이 연남동이라 이곳이 가장 편합니다.”
홍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데 홍대 지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이유는 뭘까요?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여기서 디자인하고 싶어요. 다른데 갈 생각은 없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떠나고 싶어서 떠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떠나고 싶어 떠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나도 언젠가는 연남동에서 밀려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긴 하죠. 그런데 밀려나더라도 다시 오려고 할 거 같아요.”
밀려나더라도 다시 오게 만드는 그런 에너지나 매력이 뭘까요?
“제가 살았던 곳이니까요. 사람 많고 맛집 많고 그런 홍대 이미지와는 완전 무관합니다. 이사왔을 때 처음 접했던 2002년 그 느낌을 못 잊겠어요. 연남동 안쪽에서 살다가 고등학생 때부터 홍대쪽을 가끔 오게 됐어요. 우연히 프린지페스티벌을 보게 됐는데 그런 장면들이 주는 경험이 강렬한 거죠. 그리고 당시 연남동은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철길이 놓여 있고 조금 걸어가면 동진시장에 차이나타운이 있었고. 기차가 가끔씩 다녔어요. 철길 위에 10원짜리 동전을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간 뒤에 보면 500원 짜리처럼 커다랗게 펴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한 행동이죠. 그때 많이 혼났어요.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죠.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져요. 연남동과 홍대 주변 다 좋았어요. 인생은 한 번 뿐이고 추억은 소중하잖아요. 편안한 느낌이 너무 좋아요. 걷다 보면 길이 이어지고 생각도 이어지죠.”
지금은 그 좋은 추억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안 바뀌면 좋겠지만... 어떤 해결 방법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보전을 하려면 행정의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집이 문화재로 등록될 것도 아니고. 다음날 와보면 다른 공간이 들어와 있고 여기 저거 공사 중이고 잘 모르겠어요. 아쉽고 슬프죠. 낮은 건물에 오래된 골목.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하죠.”
문화예술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자이기도 한데 젠트리피케이션 유발자로도 평가받아요. 복잡한 존재죠. 남들이 볼 땐 내 스튜디오도 비슷한 시선으로 볼 테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북촌 같은 곳은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게 업종을 제한한다거나 특정 문화예술 주체에게 권한이나 혜택을 준다거나 이런 게 가능한데 그 이유는 관점이 명확하니까. 마포는 행정이 보는 시선과 문화예술인들이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다시 일로 돌아가 볼까요. 디자인을 작품이 아니라 홍보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트스트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처음엔 작품이란 생각이 더 강했습니다. 경계가 모호하죠. 제 생각도 그랬어요. 모호했죠. 실망도 많이 했어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지적을 쉽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이 단순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디자인에 대한 철학과 의도를 공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가끔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작업을 할 때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작업이 아주 금방 끝날 때도 있지만 또 그렇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그러다 생각을 바꿨죠. 요즘은 조율해서 중간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서로 좋은 방향으로.”
작년 특구사업을 통해 홍우주와도 작업을 한 것으로 아는데 어땠나요?
“작업을 주면 믿고 맡기는 느낌이 들었어요. 일단 맡기고 나면 크게 요구를 하지 않았어요. 텍스트 수정됐다고 알려주는 정도가 다였죠. 그런데 가끔은 제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디자인에 대해 존중해주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죠.”
특구사업에 쓰인 다양한 포스터를 디자인하셨는데 의도한 방향이 있었나요?
“행정과 함께 하는 사업 포스터 보면 전형적인 느낌이 들어요. 그런 느낌 안 들게 하려고 노력했죠. 정확히 말은 못하겠지만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오픈 클래스 포스터 만들 때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보자마자 누가 했네 알아보는 건 맘에 들지 않아요. 고정된 느낌을 주는 게 싫었어요. 오픈 클래스 포스터는 만족도도 높았어요. 디자인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스타 계정에 포스터가 소개되기도 했었어요. 먹기 명상 포스터도 반응이 좋았어요. sns에 올리면 반응을 바로 바로 알 수 있어서 재밌어요.”
먹기 명상 포스터에는 입이 크게 나와 있는데 교정한 사진을 사용했잖아요. 의도한 것인가요?
“따뜻해 보이는 입을 찾았어요. 입이 클로즈업 된 사진만 계속 찾았어요. 편안한 느낌을 찾았는데 교정기까지 하고 있는 사진을 봤을 때 딱 이거다 싶었죠.”
최근에 홍우주에 가입하셨잖아요. 기대하는 점이 있나요?
“문화예술인이 젠트리피케이션 피해자이자 유발자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요. 모르는 게 많으니까 내가 올바르게 생각하는 건가 이런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제가 스스로 답을 낼 줄은 알아야 할 거 같아서요.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요. 홍대를 기반으로 하는 협동조합에 대해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홍우주를 통해 같이 해보고 싶은 게 있을까요?
“나중에는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당장은 같이 술도 마시고 친해졌으면 좋겠어요.”
디자이너로서 전시도 생각하시나요?
“전시는 몇 번 했습니다. 전시용 작품을 따로 만들지는 않아요. 작가로 보기보다는 디자이너로 봐주는 게 제일 좋습니다. 평소 디자인했던 포스터를 주로 들고 나가요. 예전에는 작품으로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 경계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작가와 디자이너의 차이가 뭘까요?
“작가는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고 디자이너는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전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같이 하는 것도 예술적으로 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트스트라고 이름도 지었던 것이죠. 생각이 몇 년에 한 번씩 바뀌어요. 오락가락 생각이 진짜 많아요. 안 해도 되는 생각을 많이 하죠.”
그런 게 또 뭐가 있나요? 안 해도 되는데 많이 하는 고민.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해요. 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안 가본 나라도 많고, 안 먹어본 것도 많고 그런 생각이 계속 나요. 사람이 80살을 산다고 하면 되게 길게 느껴지지만 겨울을 80번 밖에 못 본다고 생각하면 느낌이 확 달라지죠. 그래서 항상 계획하고 다시 생각하고 말 나오면 해보려고 애써요.”
최근에 꼭 해보겠다고 생각한 거 있나요?
“디자인물 수집을 위한 여행. 사람마다 여행 컨셉이 다 다른데 저는 관광지는 관심이 없고 디자인을 위한 여행을 구상하죠. 6월에 일본 가는데 일본책들이 인쇄가 잘 되어 있어요. 직접 가서 모으는 재미가 있어요. 중고책방 가면 희한한 것을 찾을 수 있어요. 수집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작업실에 모아 놓은 컬렉션이 있습니다.”
끝으로 인터뷰 소감 한마디 부택해요.
“편안해서 좋았습니다. 문화예술인이 젠트리피케이션 유발자이기도 하다는 분석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근데 맞는 말이라 더 와 닿았어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서 좋습니다. 원래 얘기를 잘 안 하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말을 많이 했네요. 다음에 연남동에서 술 한 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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