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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인터뷰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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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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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소 카페 PITC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11길 13)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회적기업 일상예술창작센터의 대표이자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설립할 때  2년동안 이사로 활동했었고요, 현재는 조합원으로 함께 하고 있는 최현정입니다.
홍우주가 올해 일상예술창작센터 옆건물로 이사오게 되면서 어쩌다보니 가까운 이웃생활을 하고 있네요.(웃음)
일상 홈페이지 내 직원분들 소개가 있던데, 직급대신 각자의 닉네임이 있더라, 대표님 닉네임의 뜻은 무엇인가요?
사실 직급으로 소개하는 게 홈페이지 안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각자 닉네임을 정해서 소개를 해보면 어떨까 했었고, 저는 조직의 대표로서 가장 최전방에서 성과를 내야 되는 역할이기 때문에 최전방 공격수라고 정했어요. 제가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고요.(웃음)
2.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창립 초대이사로서 지금의 홍우주를 보면 어떤 마음인가요?
홍우주를 만들 때 실제로 필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분들이나 예술가분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지다 보니 초반 조직의 체계나 안정성에 대해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현재 10년차를 바라보는 조직이 된 걸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초반에만 활동하고 이후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한 게 부끄럽기도 해요. 지금도 뮤지션 두 분이 조직을 이끌어주고 계신데, 처음에 함께 했었던 나동님이나 모라님 부터 지금 사무국에 계신 분들까지 소수지만 좋은 분들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조직이 안정화 된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죠. 사람들이 흔히 홍대앞은 망했다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럼에도 홍우주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서 사람들을 모으고 발굴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3.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일상예술창작센터에서 대표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상예술창작센터는 2002년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정확히는 코로나 직전까지 프리마켓을 열었고, 창작자들이나 공예가들 관련된 활동들의 판로를 개척하거나 창업을 돕는 일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터진 직후에는 조직의 생존에 집중을 해야했어서 당장의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는 공공 사업에 비중을 많이 두었고, 지금은 다시 창작자 관련된 사업을 진행 하기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조직에서의 제 역할은 전반적인 사업에 대한 계획이나 방향성을 잡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주로  규모가 큰 공공사업 들어갈 때 초반 사업기획과  사업 전반의 조직 운영 관리 등 이런 부분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2년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을 시작으로 일상예술창작센터가 조직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이전에는 홍대앞의 프리마켓이라는 개념이 없었나요?
그전에 프리마켓은 아나바다 시장이나 시민단체 위주의 바자회 형식으로 진행된 것들이 전부 였어요. 2천년대 들어오면서 월드컵 개최와 함께 문화 관련된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이나 일반인들이 체험할 수 있는 축제나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홍대앞 프리마켓도 그런 개념에서 일종의 한일 월드컵 이벤트의 일환으로 진행이 되었던 거예요. 사실 한일 월드컵 이벤트로 두 달만 진행 하기로 했었던 게 생각보다 너무 잘 돼서 정기적으로 가게 된거였죠. 이후에는 현재 홍우주 조합원이기도 하신 김영등대표님이 따로 프리마켓 사무국을 조직해서 진행을 독자적으로 해오셨다고 보시면 되어요.
4. 일상예술창작센터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저희 일상예술창작센터의 2023년 주요 사업은 크게 현재 홍우주에서도 참여중인 미래 청년 일자리라는 서울시 인력지원 사업과 로컬 청년들이나 청소년들 대상으로 친환경 분야 창업과 관련한 기업가 정신 교육을 진행하는 사업이 있어요. 두 사업 모두 올해 2~3년차로 일상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공 사업입니다.
그리고 원래 저희 조직에서 계속 해오던 창작자 관련된 사업들로는 지난해 런칭한  언유주얼굿즈페어 라고 올해 10월에 3일간 진행되는 사업이 있고요. 그 다음에 만든(MADEUN)이라는 창작자 콘텐츠 플랫폼을 작년에 파일럿으로 운영하기 시작하여 올해 2년차에 접어들었어요. 현재 두 가지 사업이 저희의 조직의 비전을 반영하는 사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다른 조직들이 하고있는 고민들과 비슷하게 일상예술창작센터도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비하거나,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새롭게 구상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다만 단시간에 될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도 하고 조직의 특성상 수익성에 중심을 두고 사업을 운영하는 걸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올 한 해도 다양한 시도과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는 단계예요.
올해로 20년차를 맞이한 일상예술창작센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제가 여기서 일한 지 20년이 됐어요.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나쁘고 힘든 기억이 먼저 생각이 나는데요.(웃음) 좋은 기억들 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2018년에 국제 교류의 밤이 제일 생각 나요.
2014년 코엑스에서 서울 국제 핸드메이드 페어로 시작했다가 16년 넘어오면서 국제 페어로서 본격적인 교류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노력을 했어요. 사실 그 과정에서 저희가 가장 힘을 들였던  한중일 네트워크는 쉽지않았고, 오히려 아세안 지역들 흔히 말하는 동남아 지역의 사회적 기업들과 링크가 되는 지점들이 생긴거에요. 태국의 공예문화진흥원 같은 곳들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청년들이 만든 사회적기업, NGO 같은 곳이 많았어들이요.
서로의 페어에 창작자를 보내기도 했었고 또 영국과 홍콩 같은 경우에는 콕핏아츠, PMQ 라는 사회적기업들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를 하기도 했어요. 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생기고 몇년 간 함께 사업을 진행해 오면서 5년 정도만 더 하면 아시아 핸드메이드 네트워크라고 하는 교류의 가능성이 열리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굉장한 설렘과 기대감을 가졌었죠. 그때 정말 좋았어요.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이끌어냈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고요. 그러면서 그다음 좀 더 구체적인 성과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와중에 코로나가 터진거죠…(웃음)
어쨌든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를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았었고, 그때 기억이 서로에게 좋은 기억이었고 행복했죠. 지금은 코로나가 풀리고 그때의 감각을 다시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원활동가로 활동을 하셨다가 당시 이사장님이셨던 김영등 조합원님의 제안으로 지금까지 일상에서 일하게 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20년 동안 활동을 하시게 된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자원활동가도 아니였고 제안을 주셨던 것도 아니였어요. '너 와서 일 좀 도와줄래?' 였죠(웃음)
저는 원래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을 전공했거든요.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의 영상을 찍기위해 클럽 빵에 갔다가 김영등 대표님이 ‘너 주말에 시간 되면 홍대 놀이터에 좀 와라’ 하셨던 거에요. 그래서 갔더니 쓰레기 주우라그러고, 인터넷에 홍보물 올리라고 하고.... 영상 찍으려고 갔는데 이것저것 시키니까 당시에는 짜증났죠.
사실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던 계기는 월드컵이 끝난 후 서울시와 마포구에서나 프리마켓을 불법 노점상 취급을 하며 제재를 했던 거에요. 사실 아시겠지만 우리 같은 조직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감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반골기질이 있거든요(웃음)
프리마켓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시민 중심의 예술활동에 새로운 흐름이자 사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당시 문화연대의 이원재 활동가와 카바레사운드 이성문 대표 등 다양한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기획위원이나 네트워크로 힘을 실어주셨어요. 가슴이 뛰는 걸 느꼈어요. 이때의 사건이 계기가 되었던 거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들이 생기고 해야 할 일들을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5. 한 조직의 대표로서 가장 염려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내가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티내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무슨일을 겪더라도 열심히 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한다고요. 조직의 대표로서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조직원들에게 얘기 하는 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무작정 견디고 이겨내는 것들이 답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예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자 보다는 이런 위기,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게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니어 기획자로서, 혹은 선배로서 어떻게 적절하게 쉬어가고 재충전을 하는지, 사람이 생애 주기 안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생활을 해나가는지를 보여줘야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요.
6. 개인적인 취미 또는 즐겨하는 운동 등이 있으신가요?
요가를 시작 한 지는 4, 5년 정도 됐어요. 다니던 요가원의 선생님을 따라 요가원도 옮겨다니면서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은 선생님이 수련을 가셔서요. 요즘은 집에서 유튜브 보면서 요가를 하고 있어요.
올해 2월에는 취다선이라는 제주도에 있는 리조트에 다녀 왔는데요, 3박 4일 정도를 혼자 있었어요. 제가 평소에 말을 많이 해야하는 직업인데 거기가서는 누구도 말을 안 시켜요. 3일만에 제 목소리를 처음 듣는데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근데 그게 나쁘지 않았어요.(웃음)
요가의 매력을 다시한번 느꼈어요. 원래는 아시탕가 같은 파워풀하고 속도감있게 진행되는 요가를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요가라는 어떤 행위보다도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명상이나 차 이런 것 들에 요즘 관심이 생겼죠.
다른 취미라고 하면 소설을 미친듯이 읽는 건데요(웃음) 저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소설을 진짜 미친듯이 읽거든요. 사무실 근처에 ‘책방서로’ 라고 있어요. 책방 사장님과 취향이 잘 맞아서 추천해주신 소설들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 읽으셨던 소설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읽었던 거는 최진영 작가 작품을 읽었어요. 김금희 작가님이나 최은미, 박상영 작가님의 작품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최근에는 치유나 힐링 관련된 인문서적들도 읽고 있습니다.
<조합원 인터뷰 공통질문>
클럽 빵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29길 12) / 민들레밥집 (서울특별시 마포구 잔다리로 132 1층)
7. 홍대앞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좋아하던 공간들은 대부분이 없어졌는데… 남아있는 공간들 중 말하자면 역시 클럽 빵이죠. 오랜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운영을 한다는 거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많은 뮤지션 분들과 관객들이 찾아 온다는 것과 그리고 그들을 받아준다는 거 자체도 그렇고요. 홍대앞에서 오디션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클럽, 공연장이 많지 않아요. 클럽빵은 가장 오래된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은 공간이기도 하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정말 많은 술을 마셨었죠.(웃음)
추천해 주고 싶은 맛집이 있다면?
저희 사무실은 월요일 점심시간이 1시간 반이거든요. 그래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점심을 먹으러 멀리까지 가는 편인데요, 홍익여고 앞에 민들레 밥집이라고 있어요. 한식 부페인데 인당 7000원이거든요. 정말 맛있어요.
인스타그램에 매일 아침 메뉴가 올라와요. 홍우주에서도 팔로우 하시고 한번쯤 가시는 걸 추천드려요. 아니면 언제 한번 점심시간에 다같이 민들레 밥집 가요.(웃음)
8. 최근 나를 감동시킨 것 은 무엇인가요?
아빠가 올해 2월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울거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슬픔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 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얼해야 될 지를 몰라서 늘 그렇듯이 미친 듯이 책을 읽었어요. 최진영 작가님의 홈스위트홈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는데요,
“ 내게 남은 기억, 나와 함께 사라질 기억, 나는 육체고 누군가의 무엇이다. 그러나 그보다 깊은 영역에서, 나란 존재는 나만이 알고 있는 기억의 합에 더욱 가까웠다. 사람들이 말하는 영혼이란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 - 최진영 <홈스위트홈> p.35
문구를 보는데 예전에 함께 작업했었던 416 공방의 어머니들이 생각났어요. 416공방 어머니들과 함께 작업을 2~3년 정도 한 것 같아요. 만날 때 새로 만들었다고 노란리본도 주시곤 했는데, 한번도 달아본적이 없어요. 당시 내가 감히 무얼 안다고 저 리본을 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기억"이라는 단어, 기억해 달라는 메세지가 저에게는 잘 와닿지 않았고요, 어떤 개념인지, 어떤 이유에서 기억해 달라고 하는 건지요. (그리고 기억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미 내 아이는 떠나갔는데.) 그런데 이번에 아빠를 보내고 나니까 그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아빠에 대해 좋았었던 기억이나 남겨진 많은 기억들이 내 주변에서 머물면서 아빠가 다른 방식으로 존재 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받아들이는 그 과정 속에 있는데요, 그게 되게 사무치고 슬프고 이런 감정이라기 보다는 그냥 세상을 보는 관점자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부모님으로 부터 세상에 나왔으니까 더 이상 그분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 실존의 문제에 부딪히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 여러가지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