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알면 불안감을 조금은 이겨낼 수 있어요-김민정
인터뷰 날짜 : 2019.04.16
인터뷰 및 정리 : 나동혁
장소 : 안티까페 손과얼굴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이키델릭 펑크 밴드 에고펑션에러에서 보컬, 작사, 행정노예를 담당하고 있는 김민정입니다. 음악적으로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사이키델릭에 펑크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행정노예라는 표현이 신선하네요.
“곡은 누가 쓰니, 밴드는 누가 운영하니 이렇게 물어보면 각자 맡은 역할을 작곡 노예, 행정 노예 등등이라고 소개할 때가 있습니다.”
들어보니 밴드 운영 전반을 본인들이 다 해결하는 거 같은데 맞나요?
“네, 완전한 DIY 밴드입니다. 이전에 소속된 기획사가 있었는데 전부 펑크 크루들이 모인 곳이었어요. 뭔가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소속사가 없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계약이 종료된 시점에서 나왔습니다.”
펑크의 정신을 표현한다고 했는데요?
“저에게 펑크는 기존에 당연하다 생각하는 어떤 것들의 경계를 부수는 에너지입니다. 애초에 제가 홍대를 접하게 된 계기가 펑크 때문이었어요. 크라잉넛부터 시작해서 긴 역사를 지켜봤습니다. 홍대씬의 맥락을 살리는 언더그라운드의 정수는 펑크씬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하하하)”
그 평가에 반발할 사람이 있을 거 같은데요?
“다 덤벼! 는 농담이구요. 다른 사람은 생각이 다를 수 있죠. 서로 다른 생각을 표출하면서 또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죠.”
철학이 분명하네요.
“음악도 음악이지만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해요. 그런데 계속 음악하면서 살고 싶지만 지금처럼 살기 힘든 게 문제입니다.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어떤 요소들이 삶을 어렵게 하나요?
“일단 같이 노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죠. 10대 때부터 홍대 인디씬을 동경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더 이상 밴드 음악이 주류가 아니죠. 그러다보니 새로 유입되는 팬층이 적어요. 그게 아쉽습니다. 문화적인 DNA라고 해야 하나, 저는 한국의 여성뮤지션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것을 계속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소수의 사람들만 알아봐주시거든요.”
팬층도 노령화 되고 있는 건가요?
“노령화가 문제라기보다 밴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없는 게 문제에요. 하지만 팬 중에는 광주, 목포, 대구 등등 멀리서 공연을 보러 와주는 분들도 있어요.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저희를 아주 많이 좋아해주시죠. 그 분들 때문에 힘내고 음악해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원동력이죠. 근데 먹고 사는 일까지 욕심을 부리면, 팬층이 얇은 건 객관적 사실이죠. 먹고 사는 일을 욕심이라고 표현하니 뭔가 서글프네요.”
냉정하게 시장이 아주 작다는 말인데요 시장이 커질 가능성을 보나요? 아니면 그냥 받아들이며 사는 건가요?
“당장 시장이 커질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2009년만 해도 홍대씬에서 스타뮤지션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어요. 그래서 물꼬를 터주기를 기대했죠. 그렇게 얘기한지 어느새 10년이 지났고 장기하, 10센치, 혁오 등 스타 뮤지션이 많이 나왔는데도 실제 인디씬 팬층을 늘리는데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것도 MBC 무한도전이라는 채널에 빚진게 많았죠. 지금 저에게 직접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거꾸로 인디씬이 대형기획사에 포획되었다는 반대 평가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징검다리 역할 하는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주의를 완전히 배제하고 살아남을 수 없죠. 그건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홍우주가 협동조합이 만들어진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뭉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두루 두루 엮어서 서로 끌어주고 지지해주면서 같이 잘 살아 남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 마음으로 작년에 했던 기획이 서클즈였습니다. 씬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여성뮤지션들과 신인 여성뮤지션을 느슨하게 연대하게 하는 2회 공연 프로그램이었어요. 3호선 버터플라이, 에고펑션에러, 빅베이비, 빌리카터, 애리, 썸머소울이 출연했습니다. 서로 응원해주고 지켜봐주는 자체로 저는 힘이 되고 연대가 된다고 생각해요. 빌리카터, 조한나, 저 이렇게 셋이 기획을 했습니다.”
홍우주에서 상근했던 모라님과도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이 공연을 기획하기 전 작년에 홍우주가 진행했던 스타카토 H의 <컨텐츠 기획자 글쓰기> 수업을 들었어요. 원래는 여성 록뮤지션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 홍대씬을 동경하게 된 계기 중에 컴필레이션 음반이 큰 역할을 했거든요. 근래에 씬에서 만들어진 컴필레이션 앨범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어요. 케이팝 아이돌도 못하는 것을 주체성을 가진 홍대씬의 여성 록뮤지션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기획서를 만들려고 했지만 혼자서는 부족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기획자를 낚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 모라씨와 연결이 되었죠. 가슴 뜨거워지는 이야기라며 모라 씨가 좋아했어요. 결과적으로 앨범은 내지 못했습니다. 저작권이나 스케쥴 등 여러 문제가 있었어요. 그렇지만 대신 공연을 하게 됐죠. 일렉트릭뮤즈 김민규 대표님께서 좋은 기획인데 아깝다며 공연을 해보자고 도와주셨습니다.”
조합원들이 여럿 등장하는 훈훈한 이야기네요.
“그때 만난 모라 씨가 홍우주 가입하려고 계속 꼬셨어요. 협동조합은 해본 적이 없었지만 모라 씨가 던진 떡밥을 덥석 물은거죠.”
페미니즘(여성주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공연계에서도 한참 시끄럽지 않았나요?
“작년에 한 번 크게 터졌습니다. 홍대 공연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아카이빙 되어 온라인에 많이 돌았어요. 그 내용이 트위터에 돌고 나서 알고 지내던 팬들이 공연장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정말로 팬이 줄었습니다. 당연히 속상하죠. 하지만 필요한 이야기인 것은 맞습니다. 씬에서도 젠더감수성을 키우고 바뀌어야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시에는 씬에서 자주 만나고 서로 응원해줬던 분들이 이래서 씬을 떠나겠다고 비판을 올린 트윗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도 친절한 분들이에요. 무엇 때문에 떠나는지 알려줬잖아요. 하지만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여전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제 주변에서는 젠더감수성에 대해 인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많이 개선되었어요. 이제는 어떤 말을 할 때 실례가 되는 발언인지 한 번쯤 의식은 하는 것 같아요. 제 삶에서는 큰 변화죠. 얼마 전에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것처럼 젠더 관련 인식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요즘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는 씬 자체의 프로페셔널함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일본에 공연 다녀와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일본 공연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일본투어를 종종 다녀오는데 공연장 크기를 떠나 전문성이 뛰어나요. 그러니 음향도 당연히 좋지요. 제가 갔던 모든 공연장에서는 공연 전 출연진에게 체크리스트를 줬습니다. 곡명 리스트, 시간, 곡별 장르, 템포, 음향 관련 특별 주문사항 등을 기입하고, 또 다른 페이지에는 조명, 스모그, 스토브, 암전 등 조명 관련 디테일한 효과를 어느 순간에 원하는지까지 모두 적습니다. 빔을 쏜다든지 장비를 사용하면 추가 금액이 드는 경우도 있구요. 아무튼 이렇게 다양한 요구사항을 리허설 전에 꼼꼼하게 체크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페셔널한 거죠. 장비 자체도 뛰어나지만 마인드가 다르다고 할까? 한국도 좋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부족한 상황입니다.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아요. DIY로 음악을 하다보니 열악한 상황을 자주 접하지만 가끔은 너무 아쉬워요. 환경이 좋아져야 사람들도 공연장을 많이 찾을테니까요.”
그 동안 한국에서 공연한 곳 중에 제일 맘에 드는 곳은 어디였나요?
“홍대에서는 신촌 롤링홀, 한국에서는 인천에 빌라빌레쿨라요. 공간을 운영하는 분이 오래 음악을 해왔던 분이라 만족스러운 사운드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리허설을 하는데 신이 나더라구요. 모니터 상황이 안 좋으면 공연 때 당연히 표현력이, 곧 실력이 줄어들어요. 일본 공연장에서 모니터가 너무 좋아서 놀랐죠. 부러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어떤 공연장은 전철 다리 밑이었고 대기실도 복층으로 되어 있어 머리를 숙이고 다녀야 할 정도로 좁았어요. 그런데 막상 첫팀 리허설 들어가니 소리가 너무 좋아서 입이 쩍 벌어졌어요. 그때 경험으로 한국에서도 공연할 때 신경 써줬으면 하는 부분을 미리 써서 스텝분에게 전해드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엔지니어 분이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고 좋아하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엔 써 준 것을 아예 안 읽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 생활도 하셨다고 했는데 지금도 투잡 뛰고 있나요?
“슬픈 이야기네요. 이전 직장에서 6개월 일하면 실업급여 나오는데 5개월 하고 계약이 종료되어 실업급여도 안 나오고 있어요. 지금은 일본투어 다녀오고 생각하자고 손 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밴드 하려면 토요일과 일요일은 음악 해야 하니 9시에서 6시, 월~금으로 일하는 자리를 구해야 합니다. 사무보조, 영업지원과 관련된 업무를 많이 했어요.”
물리적으로 되게 힘들 거 같은데요?
“예전에는 열정이 흘러 넘쳐서 모든게 다 좋았는데 사람의 열정은 샘처럼 계속 솟아나지 않더라구요. 한정된 자원 같아요. 언제까지 의지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내일을 모르고 사는 거죠. 처음에 밴드 했을 때 10년은 해야지 했는데 벌써 7년째입니다. 어쨌거나 10년은 계속 할 거에요. 더 할지 말지는 그때 고민하려고 해요. 일단 계속하면서 사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우선이죠.”
가입한지 얼마 안됐지만 홍우주는 어떤 느낌인가요?
“홍대에서 우주로 뻗어나가는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듣자 마자 지지하고픈 생각이 들었어요. 씬을 살리고자 사람들이 으쌰으쌰 하자는게 느껴졌어요.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하니까. 창작자 개개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해도 하지 못하는 일이니까요. 협동조합이 앞장서서 필요한 일을 하니까 고마운 마음이 커요. 음악 창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쉽게 뭉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물론 자아가 뚜렷하기 때문에 또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확고하게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겠죠. 가끔은 다양한 뮤지션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만 이들을 엮어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역할을 누군가는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위에 홍우주 가입을 어려워 하는 분들도 있어요.
“협동조합 같은 곳에 들어가면 뮤지션이 아니라 운동권으로 보여질까봐 싫다는 친구들이 있어요. 근데 운동권이면 어떤가요? 펑크락은 기본 저항이 주요 테마인데요. 그렇지만 세상의 논리와 창작자의 마인드 모두 다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는 없죠.”
홍우주가 뮤지션들에게 좀 더 친근한 존재로 다가가려면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
“이미 시도했다고 생각합니다. <DIY 뮤직 가이드북>이 출간되는 걸 보면서 무척 반가웠어요. 아주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도 나왔으니 워크숍도 계속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홍우주가 홍대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계속 알려줘야 합니다. 누구나 역사적 맥락을 알게 되면 힘들어도 버틸 힘이 됩니다. 자긍심도 생기구요. 그렇지 않으면 혼자 애쓰다 의미 없이 나가 떨어지고 음악을 관두게 될 수도 있어요. 제풀에 지치는 거죠. 누구나 자신이 위치한 맥락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해요. 홍대 음악씬도 20년이 넘었는데 이제는 역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홍우주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뮤지션 대부분 그런 맥락을 잘 알지 못해요. 접할 기회가 많이 없습니다. 기획을 잘하면 참여하는 뮤지션이 있을 거 같아요. 1박 2일로 스튜디오를 빌려서 놀자고 하는 겁니다. 일정 중에 워크숍을 살짝 끼워 넣구요. 술이랑 음식 제공하고 맘껏 놀면서 중간 중간 같이 섞여서 연주도 하고 음악도 녹음하는 거죠. 나올 때는 컴필레이션 음반이 하나 나오는 거예요. 2019년에 홍대에서 음악했던 사람들, 이런 발자국을 하나 남기는 거죠. 기획자가 있어야 해요. 홍우주가 뮤지션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하는거죠.”
역사에 대한 인식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음악을 잘 모르는 저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시대적 상황과 음악의 변화가 모두 관련 있다는 게 보이더라구요. 강변가요제, 대학가요제가 87년 민주화를 계기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막혀 있을 때 가요제가 큰 역할을 했지만 상황이 변한 거죠.
“맞아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에 걸쳐 이승환, 서태지, 윤상처럼 DIY가 가능한 뮤지션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장르가 열리죠. 그러다 90년대 후반 아이돌 1세대가 등장하면서 대형기획사가 주도하는 시스템으로 넘어가요. 역사를 아는 건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지금은 뮤지션들이 정말 많은 걸 해야 해요. 저만 해도 공연 영상을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 트위터에 올리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이것저것 다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당장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내 자취가 지워질 것만 같아 불안하죠. 역사를 알면 그 불안감을 조금은 이겨낼 수 있어요.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죠.”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주세요.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고민을 많이 해요. 아무래도 홍우주는 정부 정책이 흘러가는 방향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있고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더 많이, 자주 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연결다리가 되어주십시오.”
홍대씬의 개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홍대라는 지역이 엄청 넓어졌어요. 서교동에서 연남동, 합정동, 상수동, 망원동 계속 퍼져나갔죠. 그러니 밀도는 옅어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전체를 봤을 때는 절대 작아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위 홍대라고 불렸던 지역이 너무 넓어지니까 지역별로 특화를 시켜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홍대를 하나로 엮으려고 하니까 무엇하나도 특징적인 소스를 뽑아내기 어려운 게 아닐까요? 가령 연남동의 무엇, 서교동의 무엇, 상수동의 무엇 이렇게 색깔을 입히는 일을 우리가 먼저 하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거점도 형성되고. 홍대 전체를 책임져야 된다는 건 미션은 너무 커요. 너무 큰일을 하려니까 힘든 거 같아요. 너무 커져버린 홍대 전체를 끙끙대며 이고 가는 느낌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홍우주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얘기해주세요.
“제가 홍우주 미팅하러 간다고 하면 맴버들이 그래요. 홍우주씨 만나러 가냐고. 홍우주가 사람 이름인 줄 아는거죠. 계속 친구처럼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만나요. 홍우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