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인터뷰 - 한받

작성일
7/6/2021, 7:52:00 AM
작성자
게시일
2018/10/18
속성
Empty
유일무이한 그의 퍼포먼스는 계속된다 - 한받
인터뷰 날짜 : 2018.10.11
인터뷰 : 이현정 조합원
정리 : 나동혁 사무국장
홍우주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나요?
"몇 년 전에 마포구청에서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없애려고 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합류했습니다. 그때 저도 연락을 받았어요. 아직 홍우주가 설립되기 이전입니다. 서교예술실험센터를 정상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술가들이 라운드테이블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그 모임이 홍우주의 모태가 됐습니다. 홍대앞에 형성된 자생적인 문화예술생태계를 보전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이참에 지자체, 특히 서울시와 협의할 수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조직을 만들자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홍우주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일원이면서 홍대앞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계속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관심과 근심을 갖고 함께했습니다. 긴 이름은 제가 제안했던 것인데 당시에 찬반양론이 아주 격렬했습니다. 반대 이유는 이름이 너무 가볍고 장난스럽다. 찬성 이유는 홍대앞 스타일에 어울리면서 뭔가 미래지향적이고 신선하다. 찬반토론 끝에 제안대로 결정되었습니다."
제안했을 때 본인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장난스럽게 제안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름이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이름에서 조합의 색깔과 이미지가 묻어났으면 했습니다. 색다른 이름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즉흥적으로 제안한 것이었어요. 상상력을 홍대앞에만 한정하는 건 부족한 것 같아서 홍대앞에서부터 광활한 우주로 뻗어나가는 상상을 해보았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이름에 담았습니다."
언제 이야기인가요?
"5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2013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파동성명학이라고 이름짓기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사람 이름이 그 사람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저희 아버지가 다른 사람 작명을 많이 했습니다. 집에 관련된 책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보고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아마츄어 증폭기나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활동명도 제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발음에도 신경 쓰는 거죠?
"그렇죠. 미세한 발음이나 철자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이름이 순간적으로 떠오를 때 잡아냅니다. 이름에 따라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음악도 그 캐릭터 색깔을 고려하게 됩니다. 아마츄어 증폭기는 기타를 들고 잔잔하게 가끔은 과격하게 솔직한 심정을 노래한 포크 음악을 주로 했다면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전자음악으로 신나는 댄스를 주로 해요. 요즘 장르로 얘기하면 EDM인데 퍼포먼스가 두드러지는 공연이죠. 내용도 아마츄어 증폭기가 한 남자의 일상에서 비롯되는 솔직한 감정을 얘기한다면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나를 둘러싼 사회 현실과 모순, 불합리한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주로 해고 노동자, 철거민,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노래합니다. 돈만 아는 저질이 가장 대표적인 노래죠."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스스로를 민중엔터테이너라 칭하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자기 자신도 민중의 일부라는 자각을 기반으로 노동자, 농민, 철거민, 장애인,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담긴 노래와 퍼포먼스를 합니다. 공연 장소도 주로 거리에서 집회, 시위, 투쟁과 함께 해왔죠."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대변할 때는 공감이 먼저 되어야 할 거 같고 사람들이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는 당사자성이 있어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맞습니다.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 공감을 못할 때도 더러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 사회 모순이나 불합리한 점들을 많이 겪었죠. 음악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10년 가까이 일을 했어요.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오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에 공감하면서 연대의식을 갖고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음악한다고 하면 보통 예술가라고 하는데 본인 정체성을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2003년 당시 이대후문에 있었던 클럽빵에서 데뷔했어요. 그러다 저도, 클럽빵도 2004년에 홍대로 왔습니다. 그때부터 홍대앞에서 공연하고 음반을 내고 했지만 완전한 음악가라고 하기는 어려웠어요.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공연하며 살았죠. 완전히 음악가로 활동을 시작한 거는 2010년 정도부터입니다. 최초에는 노동자의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그런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제 고향은 구미인데, 미리 찾아보니 한받님은 대구출신 이시던데요?
"대구랑 구미는 서로 인접해 있어서 저도 구미에 관한 추억이 있습니다. 전공이 전자공학이었습니다. 공대를 나오면 학교 졸업하고 대부분 일자리 많은 구미로 갔습니다. 음악한다는 생각을 졸업할 때까지 거의 못했어요. 저도 마지막 학년에는 구미공단으로 출근했습니다. 공단에서 일하면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LG디스플레이에서 6개월 정도 일했습니다. 주로 특허 관련 업무를 했는데 한국에 특허가 별로 없을 때라 대만, 일본쪽 중심으로 외국 특허를 리서치하는 업무를 주로 했습니다. 그때 충격을 받은 게 같은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도 생산직 노동자들과 사무직/연구직 노동자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거였습니다. 공간과 동선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서 거의 마주치지 않습니다. 왜 이럴까 고민이 들었고,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의가 들더군요."
마치 신분 사회처럼 느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있습니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공단에 취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자리를 얻으로 서울에 왔다가 우연히 한예종 영화과 조교로 일하게 됐고 공연도 그때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구에 있을 때는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꿈이 있었는데 졸업할 때쯤엔 포기했어요. 꿈을 갖고 있다가 포기하니까 많이 우울했습니다. 외롭고 쓸쓸한 감정이 생활을 지배했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어요. 그때 옆에 있던 기타를 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당시 만들었던 노래들이 아마츄어 증폭기 초기 노래들이죠."
서울 와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원래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나요?
"혼자 만들어 공원에서  부르고 그런 적은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홈페이지 만들어서 노래 녹음한 거 올리고 그랬죠. 그때 벌써 그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이 메일로 노래 좋다고 메시지 주고 그랬어요."
90년대 후반, 대구에서 대학 다닐 때부터 음악감상하는 데가 많았어요. 지역에 무가지도 있었죠. 동성로, 소방서 쪽에 자주 갔었는데 에시드가 기억나네요.
"저도 소방서 쪽에 LP판 사러 자주 갔었죠. 에시드도 기억나구요. 주로 쟁이라는 곳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삼덕소방소 쪽에는 꼬뮨이라고 거기도 자주 갔는데 주로 쟁이에서 곳에서 퍼포먼스를 했죠. 쟁이가 약간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있었어요."
STACCATO H 투어로 진행하고 있는 홍두리 탐험대 이야기 해볼께요. 어떻게 이름을 지은건가요?
"홍대앞에 수많은 클럽과 갤러리와 전시장과 대안공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 공간을 둘러보면서 사람들에게 홍대앞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홍두리 탐험대의 홍은 홍대를 가르키고, 두리는 두리반을 가르킵니다. 두리반이 2009년 말부터 2011년까지 재개발에 맞서 싸우면서 음악가들은 물론 예술가, 시민, 활동가들이 힘을 합쳐 자본을 이긴 상징적인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맥락을 두루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홍두리라고 하니까 귀여운 캐릭터 같기도 하구요."
<파티51>을 봤습니다. 영화를 종로쪽 극장에서 봤는데 상영 후에 돈만 아는 저질을 부르면서 사람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어요. 그때 두리반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탐방 코스 중 지금 없는 곳들도 있습니다. 사라진 장소를 이야기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사라진 공간이 많지만 지금도 계속 남아 있는 기운이 있습니다. 홍대앞은 한국에서 유희와 난장이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하나의 씬입니다. 그런 씬이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건 아니죠. 끊임없이 자본이 들어오고 한편에서는 이에 저항합니다. 그 밑바탕에는 자유롭게 놀고 싶은 유희와 난장의 정신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단지 놀기만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아닙니다. 저항의 역사가 더해진 것이죠. 그 투쟁에는 승리도 있었지만 많이 패배하기도 했습니다. 사라진 공간에 가보면 건물은 덩그러니 있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클럽이나 공연장은 보이지 않고 함께했던 시간도 희미하죠. 하지만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누고 사라진 공간에 갔을 때, 상상하며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유희, 난장, 저항, 투쟁을. 새롭게 상기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로컬트립을 할 때 저는 종로를 자주 갑니다.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흔적이 많아요. 역사를 잘 아니까 사람들이 공감을 잘 합니다. 홍대에서는 과거는 현재에 어떤 의미일까요?
"유흥과 소비의 공간으로만 보이던 곳이 자유와 난장의 공간으로 새롭게 보이는 것이죠. 지난 역사를 다시 소개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다시 꿈꾸는 겁니다. 새로운 세대가 이 공간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저는 아직 그런 힘들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예술과 젊음, 창작, 생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공간이 있나요?
"두리반이 가장 상징적 공간이죠. 서교예술실험센터도 마찬가지구요. 옷가게가 많이 들어와 있지만 서교 365번지에서도 철거당할 위기가 많았지만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막아낸 사례들이 있구요. 여전히 남아 있는 라이브 클럽들도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소개하면서 연대의 소중함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술과 음악이 사회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투어는 몇 번하셨고 주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이야기 해주세요.
"두 번했습니다. 처음에는 20대 청년들이 왔고 그 다음에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 있는 예술가나 활동가들이었습니다. 반응은 서로 조금 달랐습니다. 홍대앞을 경험한 정도가 다르니까요. 과거를 잘 모르는 경우에도 크라잉넛은 다 아니까 크라잉넛이 여기 드럭에서 출발했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신기해하죠. 그냥 평소에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거리 가운데 그런 공간들이 섞여 있다는 걸 알고 좋아합니다. 실제로 클럽 안에서 리허설하는 모습도 보여줬더니 아주 신기해했어요. 홍대앞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복잡한 마음이죠. 자기가 알던 홍대앞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그리움이 남아 있어요. 그때 그 느낌을 다시 느끼기도 하구요. 이제 홍대는 너무 변했다고 혐오를 했었지만 아직도 그 기운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망원, 연남에 오래 살면서 홍대앞이 변해가는 것을 지켜봤어요. 요즘은 홍대앞에 가면 다이소랑 도서관만 갑니다. 스타카토 H 투어 때문에 최근에 라이브클럽에 갔는데 다시 가슴 뛰는 느낌을 받았죠. 더 늦기 전에 더 열심히 다녀야겠어요.
"혐오하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아직까지 꿋꿋이 남아서 버티는 공간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자신이 바라던 홍대앞을 그리면서 여전히 계속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계속 찾아다니고 응원해야 합니다."
본인이 생각했던 투어의 이미지가 있었을텐데요. 실제 해보니 어땠나요?
"소개하고 싶은 공간이 참 많습니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계속 아쉬웠어요. 어떤 때는 사람들이 약속시간보다 늦게 와서 시간이 촉박했구요. 욕심이긴 하겠지만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홍대앞 공간들을 최대한 많이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투어를 하면서 공간을 소개하겠다고 하면 당사자들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런데서 서로 상당히 힘을 받아요. 가슴이 찡합니다. 계속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발길이 이어지게끔 하고 싶어요. 지역도 극동방송국 삼거리, 홍대앞놀이터, 상상마당 정도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 돌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동선도 길어지니까. 그래서 아예 코스를 여러 개 만들면 어떨까 싶기도 하구요. 최대한 많이 알리고 싶은 생각입니다. 다 들으려면 하루 종일 걸릴 지도 몰라요. 하하하하"
여전히 그런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것이 너무 어려운 숙제 같습니다.
"그러게요 어떻게 그 분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홍대앞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들이 많은데 일목요연하게 역사와 공간을 소개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어요. 시시콜콜한 문화관광프로그램보다 낫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에는 클럽 공연으로 마무리하고."
음악활동을 하다가 투어를 고민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길거리 공연 경험이 많고 사람들을 이끌고 이동하며 퍼포먼스를 하는데 익숙해졌습니다. 장점을 살려서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죠. 홍대앞 문화공간을 소개하고 싶은 욕구랑 겹쳐서 하게 됐습니다."
늘 선글라스를 쓰던데 민망해서 그런 건가요?
"그런 측면도 있죠. 최대한 저 자신을 퍼포먼스 속 캐릭터로 만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광대 같기도 하고 각설이 같기도 한데 주변 여건에 최대한 아랑곳하지 않고 퍼포먼스를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이제 민망하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길거리 퍼포먼스의 달인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면 지형지물을 퍼포먼스 요소로 쓸 수 있어요. 그런 게 참 재밌습니다. 즉흥적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 생생함도 너무 즐겁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살아 있는 느낌이 좋아요. 진짜 라이브죠. 사람마다 에너지가 다 틀리니까 반응도 다양합니다."
가끔 무관심을 넘어 적극적으로 불편한 내색을 비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지금까지 그렇게까지 하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있는 분들과 함께 해서 그런 듯 합니다. 퍼포먼스가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조금 충격을 받는 분들은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익숙해지면서 점점 호기심을 내비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은 노래를 할 때 좀 지켜보다가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분위기가 살아나죠. 돈만 아는 저질 같은 경우에도 퍼포먼스를 하게 되면 긴장된 분위기가 누그러져요."
<파티 51>에서 돈만 아는 저질 공연 장면을 봤을 때는 저항의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공연을 보며 따라하다 보니 그 대상은 나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공연 중에 ‘내가 제일 저질’이란 가사가 들어갑니다. 하하하하.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한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봐야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이나 구루브 구르마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는데 요즘 근황은 어떤가요?
"2015년에 홍대앞에서 만리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활동기반도 바뀌었죠. 홍대앞은 여전히 그리운 곳입니다. 제2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제가 사는 동네를 중심으로 생각이 돌아갑니다. 이 동네가 옛날 느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봉제공장도 있구요. 동네에서 예술가로 지역 주민들과 만나고 호흡하고 활동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거리극도 해봤죠. 지금도 동네공연을 계속 구상하고 있어요. 책방도 이 동네 안에서 문화공간으로 기능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었습니다. 지금은 동네를 기반으로 한 활동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만리동으로는 언제, 어떻게 이사오게 되었나요?
"3년 전, 2015년에 이사왔습니다. 만리동 예술인주택이라는 서울시 사업 있었는데 여기 지원해서 됐습니다. 그 이후로 만리동에 살게 됐습니다."
홍대앞에서 활동할 때랑 차이가 있을 거 같은데요?
"일단 공기 자체가 다릅니다. 홍대앞에는 자유분방한 공기가 있는데 여기는 주택가라 조용하죠. 여기에서는 제가 상당히 튀는 존재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볼 때 홍대앞에서 독특한 사람이 이사와서 동네에서 뭔가 한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대체 뭘하는 거지 이러고 있을 거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게 느끼기도 할 거 같고 전반적으로 서로 탐색하는 시간인 거 같습니다."
책방 <만유인력>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주세요.
"책방이지만 수시로 공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위댄스도 와서 공연 했었죠. 오후에는 아이들 공부방으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오프라인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게 참 중요합니다. 하나의 진지가 되고 베이스캠프가 되기 때문이죠.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게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월세의 부담이 제일 크죠. 이 공간을 마련할 때도 페이스북에서 사람들 후원을 받아서 보증금을 마련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응원 덕분에 이 공간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큽니다."
공간 자체를 유지하는 일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요?
"작년 8월에 문을 열었는데 올해 초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겨울이다 보니까 공연도 없고 월세는 내야 하는데 장사는 안 돼고 그래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겨울을 호되게 한 번 겪은 샘이죠. 어떻게든지 지금까지 버텨오면서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에는 버티면 무언가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일단은 무조건 버텨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도 가능하면 좋습니다만 어려운 일이니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버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이 동네도 재개발 분위기가 있습니다. 먼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여기에서 계속 버티면서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동시에 예술가들 계속 초대해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저항의 아카데미이자 저항의 모태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저번에는 어린이들 디제잉 워크샵도 했습니다. 새로운 세대를 키워내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한마디 해주시죠.
"일단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버티면서 이벤트를 계속 만들어야죠. 이벤트가 모여 더 높은 차원으로 비약했으면 합니다. 관계가 형성되고 현실의 문제가 알려지고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질적으로 발전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커뮤니티이자 공론장이 되는 것이죠. 이 공간에서 끊임없이 이벤트가 만들어지고 그 이벤트가 모여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해서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틈을 파고 들어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버티고 계속 이벤트를 만들어내자!"
오늘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홍우주에서 이렇게 먼 공간을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홍우주가 요즘 좋은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만유인력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지리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홍대앞에서 생성된 자유로운 영혼이 내 안에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홍우주를 응원합니다. 홍우주도 <만유인력> 많이 응원해주십시오. 서로 응원해 주면서 같이 우주로 나갑시다."
TOP